흔들리는지 흔들어 보는 '흔들바위' 흔들바위는 강원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봉산에도 있답니다.
최영장군 활터 최영장군이 소년시절에 애마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기를 했던 곳으로 화살을 쏘아서 말이 빨리가면 큰상을 내리고, 화살이 빠르면 말의 목을 치겠다는 내기였다. 소년 최영은 말을 타고 남동쪽5km지점에 홍성읍에있는 은행장 방향으로 화살을 쏜후 말과 함께 바람처럼 달렸다.
최영이 말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최영은 약속대로 말을 목을 내려치려는 순간 화살이 슝하고 지나갔다. 최영은 자신의 경고망동을 후회하며 뜨꺼운 눈흘렸 던곳으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자고 했던 애마를 그자리에 묻어주었다. 지금도 홍성읍국도변 은행정옆에 금마총이라는 무덤이있다.
정자에 올라와 현대홈쇼핑 트랑고 보온병셋트중 작은거에 따듯한 물을 담아와 카누커피 한잔하며 보온병의 온도를 비교해 보았는데, THERMOS, 트랑고 보온병은 물의 온도가 따근한 커피 마시기 좋은 제품.. 잔치식혜 카누 동원샘물로 산속에서 쉬어가며 목축임이 좋았다.
최영장군활터에서 바라본 병풍바위모습
최영장군활터에서 시작 최고봉, 노적봉 악귀봉을 지나 병풍바위로 하산을 했다.
조경을 해놓은 듯한 소나무들이 멋진자태로 서있는데 멋진풍경이다.
용봉산 옆으로 크는 나무 용봉산은 다양한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와 분재형태의 아름다운 소나무가 산재하고 있고 이곳으로 옆으로 크는 소나무는 수령이 약 100년된 용봉산의 보물이다. 눈으로만 보세요~~^^
새해를 맞은 연초에 이렇게 가족끼리 산행을 할수 있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인것 같습니다..
산행길에 만나는 기암괴석들과 함께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는 용봉산은
가족 산행지로서는 딱인것 같구요..
산행하며 즐겨보는 간식들은 역시 산행의 별미 이기도 하구요..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하루리님의 가족들은 올 한해도 건강하고
복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푸른색 꽃이 피는 다년생식물로 채소 또는 샐러드로 먹으며, 뿌리를 구운 뒤 갈아서 조미 첨가제를 만들거나 커피 대용으로 쓴다. 유럽이 원산지로 19세기 후반 미국에 도입되었는데, 네덜란드 베리에 프랑스 독일 등에서 널리 재배하고 있으며 북아프리카에서도 적은 양이 재배되고 있다. 미국 동부와 캐나다의 목초지 또는 길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잡초이다.
내가 많은 것을 누리지 못했을적에 부러움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내가 하는 것을 남들에게 체험을 해줌으로 해서 즐거움을 주기 위해 페이스북에 공지를쳤는데, 무조건 바위는 무서움에 존재라고 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섭지 많은 않은 새로운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해 본다.
갈매기때에 새우깡을 던져주며 가는 무의도 섬!
잠시 잠깐의 흘러감에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은빛 반짝이는 바다를 본다.
갈매기때들에 춤추는 모습 니들이 새우깡 맛을 진정 알더란 말이냐, 하늘 높이 올려든 새우깡과 양파링 빨리 와서 먹어지길 바라며..
남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네도 해본다.
좋아서 한평생을 살았지만, 서로가 무엇을 원하고 함께 가야하는지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몰랐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네가 너를 알고, 내가 너를 알아가니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부부가 같은 취미로 함께 한다는 것은 큰 행운인 것이다.
너 따로 나따로라는 인생을 살 바에 찢어지는 것이 났다고 생각이 든다.
쓰다가 버린 고물도 주어다가 멋지게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주기 아까워 밍기적 거리다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내가 가꿔가기 나름이다.
내사람이 좀 아니더라도 멋지게 만들어 함께 살아감이 부부가 아니던가..
긴세월인 것 같아도, 하루아침에 죽음을 맞이 하는 이도 있고, 하루아침에 저 지구 먼나라를 도는 사람도 있다.
내안에 맞는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며 나를 발견하고 도전하는 정신으로 살아갔으면 싶다.
배를 타고 새우깡을 주며 가는 여행길 사진을 해서 좋다.
작은 렌즈로 들여다 보는 아름다운 세상속
두눈을 크게 뜨고 볼때와 렌즈로 작게 보는 느낌은 천지 차이라고
남이 하니깐 나도 한다 보다는 작은 렌즈로 가슴속 떨림을 느껴보시라~~
잠진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무의도 하나개 진입 리어커를 이용 짐을 나르고
남자들은 텐트를 치고 보조 혜경씨가 셋팅을 하고 나는 음식을 만들었다.
야외에서 붙여 먹는 해물파전 감자전은 인기메뉴다.
다음날 아침 해장으로는 꽁치김치찌개와 콩나물해장국이 짱이다.
운임료 차를 배에 싣는 것은 21,000원
사람은 머리수당 3천원이다 왕복행임
독일인과 아메리카(미국)인에게 선보인 해물파전 쑤기표
남편은 후배님들을 데리고 텐트를 치고, 혜경이 이쁜동생과 저녁상을 만들었다.
여행을 가서 만들어먹는 음식으로 통오징어찜, 해물파전, 호박전이 좋다.
한국형 몽마르뜨 언더으로 지나가는 외국인을 불러세워 놓고 갖가지 질문을 던진다.
마이클은과 미스한은 행당동 영어선생님
마이클은 전형적인 한국인 Style~
한국 소주를 잘 마시는 20대
폴리스는 연세댁학교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
전형적인 한국스타일 마이클 내성적인 아줌마들과 수다떨기좋아하는 폴리스와 미스한
폴리스와 미스한은 행당동 영어선생님
외국인이 본 우리는 .......................... 영준이 고추대장 인제씨는 술대장 남편은 암벽대장 나는 이쉐프짱~~
외국인에게 호박전과 해물전을 맛보이고 노가리를 구워주며 노바디원츄 노래를 불러주고 한국노래 아는거 있느냐했더니 강남스타일 춤을 보여주었다.
미스한과 폴리스 둘은 친구사이
미스한은 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폴리스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독일인 학생이 일어를 유창하게 해주었다.
5일 근무를 하고 맞는 휴일날 직장을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쑥 걸을까? 영화도 좋고 서울성곽도 좋고 아참 그런데 나 벽화마을 가고 싶어라는 전화가 와서 열심히 뒤졌다. 개미마을이 더 좋은데 친구가 혜화동 낙산공원에 벽화가 있다고 가자고 해서 나왔는데 경치에 반하고 조각품이 오르는 중간 중간있어 기념사진도 담아보았다.
낙산은 산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서울 종로구 성북궁 걸쳐 자리한 산으로 서울 도성의 동산에 해당된다. 낙산은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서울 내자산의 하나로 풍수지리상 서쪽 우백호 인왕산에 대치되는 동쪽 최정릉에 해당디며, 산전체가 화강암암반으로 되어있으며 예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수석고 약수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서쪽 산록에 있던 쌍계릉은 암석이 기이하고 수림이 울창하여 물이 흐르는 절경으로 삼청인왕백운 청학동과 더불어 도성 안 5대 명승지로 꼽혔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아우 인평대군의 거소인 석양루가 있었고, 이화정과 양조때 문인 이심원이 지은 일옹정 등 많은 정자는 왕족 문이 가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동촌 이씨의 세거지를 비롯하여 조선초기 청학리 하정류관이 기거 하였고, 후일 지봉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저술한 곳인 비수당 등 유적이 많은 곳이다.
추사고택은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대왕의 부마이신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께서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추사선생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며, 주변에는 추사선생 묘, 월성위 · 화순옹주 묘와 정려문, 백송, 추사선생이 수도하던 화암사 등 추사 선생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있다.
추사고택은 304,47㎡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 사당채가 있고,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너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너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건너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정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칸으로 그리 흔치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형이다.
사랑채는 바깥 솟을 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가택관념이었는데, 이는 유교적 윤리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 사랑채는 남쪽에 한칸,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마루공간이 큰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추사고택은 하누리 시동생이 이곳에 전통혼례를 하고 15년이 흘러 다시와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운 곳입니다. 그때는 이렇게 기록할 생각도 없고 그냥 일기쓰는 정도의 기록만 남겼는데요, 정말 새로운 마음이 들어가네요~~
사랑채댓돌 앞에 세워진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刻字)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쓴 필체가 액자에 담겨 사랑채 마루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을날의 추사고택풍경
사랑채 바깥 소슬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자형의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가택 관념이었는데 그것은 유교적 윤리 관념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사랑채는 매우 크지만 남쪽에 한 칸의 온돌방,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의 툇마루이다.
이렇게 큰 마루공간이 있는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요긴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THE SARANGCHAE
The Sarang-chae is shaped with a half square of "ㄱ" and is located in the garden which comes directly through a small wooden gate. It was the intrinsic conception of building in the chosun Dynasty to strictly discriminate the main building from Sarangchae (a drawing house built separately from the main building in the same premise and this building was for guests), and this conception was based on the ethical idea of confusianism.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1844년 완당나이 59세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適)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이다.(개인소장)
이 그림은 추산선생이 제주도 대정에서 8년여의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자신의 심의를 그대로 형상화시킨 격조 높은 뛰어난 작품이다. 경울의 텅 빈 공간안에 서 있는 노송 몇 그루는 바로 선생 자신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원래 역관 이상적이 지난날 친하게 지내던 정의를 잊지 않고 귀중한 책들을 유배 중인 선생께 보내주는데 대한 보담으로 『松栢』은 「추운 겨울이 되어야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뜻을 실어 그려준 것이다.
국보 제180호로 지정 되었다.
SE HAN DO
This painting was drawn by Chusa on Jeju lsland during his 8 years of exilc. It was painted for his dear friend, Translator Lee Sang-jeok, in thanks for the precious books he sent him.
This sophisticated piece of work is considered a great reflection of his mind. Chusa himself said the piece represents that "pine trees reveal their true value in cold winter." Perhaps he was comparing himself to the trees standing in the barrenness of winter.
It has been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180.
사랑채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商佑)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 (刻字)한 것이다.
각 기둥에는 김정희선생님의 서체로 보이는 글들이 짧막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그중 마음에 드는 걸로 몇개 담아왔어요~~
안채 여섯칸 대청과 두칸의 안방, 두칸의 건너방, 그리고 안방부엌, 안대문, 협문, 광등을 갖춘 "ㅁ"자형 집이다. 안방과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천정은 다락이다. 대청 대들보에는 추사선생의 필적으로 짐작되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육간대청은 그리 흔하지 않은 큰 마루이며, 이런한 규모가 큰 "ㅁ"자형 가옥은 주로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이다.
THE MAIN BUILDING
The main building with a square shape includes a hall with a dim-ension of 6 kan(a kan is equivalent to 5.9514 sq.ft), a living room with a dimension of 2 Kan.an opposite room of the living room with a dime-nsion of 2 kan, a kitchen attace-hed to living room, another kitc-hen a ttached to the opposite room, a gate to and from the main buil-ding, a side gate and a barn. In the exterior of the living room and its opposite room, a calligr-aphy seemingly written by chu sa is pasted on each side of the beam which runs between the living room and its opposite room.
솥이 있는 쪽 좌측으로는 자연경치를 볼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 감나무에 감이 익어 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가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감나무에서는 감이 익어 가고 있네요..
안채 뒷쪽 감나무를 따라 올라오면 추사 김정희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방명록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는 모습도 볼수 있었는데요, 이것도 후세에 남겨질 보물이 아닐까요~
장난친 사람도 있네요 현대회장이 다녀갔다고 기록하면 후세에 이것도 역추적 하려나요 ㅎㅎㅎ
가족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어 보았습니다.
액자유리에 반사되서 제모습만 나오고 김정희 선생님의 모습이 안보여서 제가 합성좀 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선생은 조선왕조 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로, 벼슬은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년간 유배생활을 지내다, 말년에 생부 노경(魯敬)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를 일기로 1856년 10월 10일(철종7년)에 작고하셨다. 선생은 단순한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시대사조의 구문화 체계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 들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하게 한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先覺者)이기도 하다.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巨擘)으로서, 청조의 고증학풍(考證學風)을 도입하여 학문으로는 경학(經學), 금석학(金石學), 문자학(文字學). 사학(史學), 지리학(地理學), 천문학(天文學)에 이르기까지 박통(博通)하였고,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巡狩碑)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완당집(阮堂集), 예당금석과 안록(禮堂金石過眼錄),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완당척독(玩堂尺牘), 담연재시고(覃연齋詩藁)등이 있다. 이와 같이 넓고 깊은 학문과 천부의 재질을 바탕으로 한 추사의 예술은 시(詩)·서(書)·화(畵)·전각(篆刻)등 에도 뛰어났으며, 서도(書道)는 추사체라는 독자일문(獨自一門)을 열어 서예사상 지고의 경지를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는 「묵란도(墨蘭圖)」와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등이 있다. (옮겨담은 글입니다.)
하누리는 이곳을 릿지로 올랐다가 남편한태 혼구녕 난곳이에요 ㅎㅎ
영정모습을 보고 아래로 내려가면 석류나무와 감나무 모과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익을쯔음 다시와보고 싶네요~~
시댁이 시골이어서 좋은점은 이러한 문화거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어때요, 좋으시지요~~
고택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석류나무
그리고 감나무..
모과나무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을 돌고 밖으로 나오면 능이 있습니다.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의 묘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아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和順翁主)의 합장묘(合葬墓)이다. 묘에는 돌담장이 둘러있고,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 장명등 등의 묘석(墓石)을 구비하였다. 비문에는 영조의 어필(御筆)이 새겨져 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묘
1937년에 초배(初配)인 한산이씨 묘에 추사묘와 계배(繼配)인 예안이씨 묘를 이장하여 3위를 합장하였다. 묘에는 석상과 망주석 1쌍이 있고, 묘비는 그 해 9월에 세웠는데, 종인(宗人)김승렬(金承烈)이 짓고 썼다.
김한신과 화순옹주(和順翁主)의 합장묘(合葬墓)를 돌다 전 문화재청장님을 만났습니다.
제 망원렌즈에 들어온 전 문화재 청장님, 그래서 기념사진 한장 남겨 보아요 ~~
화순옹주 정려문(和順翁主 旌閭門)
정려문(旌閭門)은 추사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貞節)을 기리고자 정조가 명정(命旌)한 열녀문(烈女門)이다.화순옹주는 부군 월성위 김한신(1720-1758)이 39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하자, 그때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군을 따르고 말았다. 영조는 화순 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정문(烈女旌門)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명정(命旌)하였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이야기는 모두 전 문화재청장님이 이야기 해주시는데요 너무 재미있습니다. 시간을 초과 하리 만큼 재미있게 이야기 하여 주셔서서 자리에서 옮짝 달싹 않하시고 경청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백송(白松)은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 천연기념무로 지정된 백송은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이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때, 자제군관(子第軍官)자격으로 생부 김노경(金魯敬)을 다라 청나라 연경(지금의 북경)에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씨를 고조부 김흥경(金興慶)의 묘소 앞에 심은 것이다.
원래 밑에서 부터 세 가지로 갈린 수형이었는데, 두 가지는 고사(枯死)하였고, 현재는 한 가지만 남아있다. 수령(樹齡)은 약 200년이며, 수고(樹高)는 약 10m이다.
주변으로는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기념사진 담기 좋고, 살방 살방 둘러 보기 좋은 곳이랍니다. ^^
암벽은 완벽한 장비를 가지고 오르는 것이구요..
릿지도 장비를 가지고 올라야 하는데, 일반 경험이 많은 대장님들은 장비없이 오르세요, 저도 줄없이 3번정도 올랐다가 남편한태 야단 들었지요..바위를 줄없이 오르는 느낌은 처음 경험해 본곳이 저곳이에요..저래 유명한 비석인줄 몰랐는데, 편집을 하다 보니 불현듯 사진이 생각나서 찾아서 올려 보았답니다.^^
몸길이는 약 14cm이며, 머리는 짙은 갈색, 등은 갈색이고 검은 세로줄 무늬가 있다. 날개에는 가는 2줄의 흰띠가 있다. 얼굴은 희고 이우(耳羽)와 턱밑은 검다. 암수가 같은 색을 띤다. 어린새는 전체 색깔이 흐리고 뺨의 검은색 얼룩무늬도 불확실하다. 성조(成鳥)의 배는 흐린 흰색이다. 크게 '짹, 짹' 운다. 마을, 시골, 도시의 공원, 농촌 등지에서 서식한다. 나무에 난 구멍, 인공새집, 벽의 틈 등에 둥지를 만들며 황갈색에 갈색 반점이 있는 알을 4~8개 낳는다. 구대륙 북반구의 유럽과 아시아의 거의 전지역에 걸쳐 서식하는 텃새이다. 아무르 지역, 우수리 지역, 중국 동북지방 및 한국에서 번식한다. 한국에서는 도시와 시골의 어디에서나 번식하며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브르태니커 백과사전
안녕 ~! 나 참새 방가 방가
강아지풀
볏과에속한한해살이풀. 줄기는높이가20~70센티미터정도이고뭉쳐나며, 잎은선형이다. 여름에강아지꼬리모양의연한녹색또는자주색꽃이피며길가나들에서자란다. 종자는구황식물(救荒植物)로식용된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등지에분포한다. 학명은Setariaviridis이다.
5일 근무를 하고 쉬는 토요일 남편이 지난번 등산바지를 하나 사줬는데 영 자신이 없는 색상 주황색, 휴일이고 못 처럼 종로5가를 나갔습니다. 이곳에는 등산복을 파는 곳이 줄을 섰지요, 그중 같은 재질에 유명메이커는 아니지만,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지를 교환하고 나니 블친언니들과의 약속시간은 3시 30분 시간이 3시간 가량 남아서 종로5가에서 3호선을 갈아 타고 안국역을 왔네요, 인사동거리에는 휴일을 만끽하시는 분들로 가득했습니다.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포스팅을 하면서 역사 표지 문구에 영어가 있길래 타이핑을 치며 단어를 읽으며 했더니 조금 감이 오네요~~ 그래서 안되는 영어로 대화도 좀 나눠 보구요..그러면서 보내는 혼자만의 3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바디랭귀지로 하니 되더라구요 ㅎㅎㅎ 9월의 첫날 인사동 풍경입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외모, 완벽한 요리 실력, 때론 섹시하기까지. 남들이 보기엔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여자 ‘정인’(임수정). 하지만 입만 열면 쏟아내는 불평과 독설로 인해 남편 ‘두현’(이선균)에겐 결혼생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매일 수백 번씩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무서워 이혼의 ‘이’자도 꺼내지 못하는 소심한 남편 두현. 그런 아내와 헤어질 방법은 단 하나뿐. 그녀가 먼저 두현을 떠나게 하는 것!
실생활에서 느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영화다 싶다.
잔소리는( = ) 이꼬르 관심이다
영화 아내의 모든것을 보고 왔어요, 평이 아주 좋았거든요, 내아내의 모든 것의 장르는 로맨틱 코메디이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일본에서의 만남 연애,결혼까지 정말 짧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결혼 7년차 부부로서의 모습이 보여지죠, 쉴새없이 터지는 그녀의 바가지, 참을 수 없는 행동들 내아내의 모든것은 이런 아내의 모습들을 남편의 관점에서 바라 봅니다. 실제로 결혼해서 예전모습을 보이고 사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밖에선 잘나가는 건축가이지만 아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소심한 남자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정인(임수정)의 제멋대로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 주었고, 가끔 우리도 정인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최고! 남편에겐 최악인 까칠한 아내 정인/임수정
상대, 장소 상황 가리지 않고 할말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솔직한 성격의 정인
두현은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아내의 독선적인 행동에 질려서 이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너무 강한 아내 정인의 성격에 짓눌려서 유명한 바람둥이 장성기(승룡)에게 자유를 선사해줄 마지막 희망인 카사노바 성기의 코치에 따라 아내를 떼어내기 위한 최후의 작전에 돌입한다.
두현(이선균)은 아내의 모든것을 리포터로 작성을 해서 바람둥이 장성기에게 전해주고 수시로 감시를 한다.
배우 이선균은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최고의 목소리에 보기만 해도 좋은 배우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있어 작업하기 수월했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커서 큰 흔들림이 없는 정인에게 오히려 성기(승룡)가 조금씩 빠져들어간다.
남편의 결별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녀는 카사노바 성기와의 만남 이후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두현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정인을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게 한다. 출연료를 자기가 줘가며 일상에서 바른말을 잘하는 아내(정인)이 방송에서도 놀라운 인기를 끌게 된다. 방송에서 아내(정인)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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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 고생하셨네요
아무튼 유적지 주변이 많이 변했네요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데 외출 하고 하니 힘들지 않았나요. 사진을 보니 즐거운 시간 가지신듯 하네요
저는 그냥 기억이 희미해 져서 하루를 기록할 뿐 아무 욕심 없어요..
잘보고갑니다 ㅎㅎ
설 연휴 푹 쉬고 즐겁게 가족들과 보내시길 바래여
근무랍니다.
올해는 일터에서 보내네요
고운덕담 주시어 감사드려요~^^
물속에서 쑥쑥 자라는 겨울나무... 라는 표현이 좋네요 ^^
그림 같이 예쁜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_^
사진이 좋은데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서 이길이 내길이 아닌가벼..
이러면서 잼나게 하루를 살아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는게 더 재미있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