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문길에서 운현궁을 가기위해 걷던길에서 멋진 이정표를 만났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다 보면 못 보고 지나칠 그런 모습들이 많이 있다.

예전과는 달리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요즘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http://sanejoa70.tistory.com/837 ☜ 지하철 역명 표기 클릭

 

이정표를 훝어 보고 운현궁으로 정해 발길을 옮기는 날 비는 추척 추적 내리고 우산쓰고 카메라 들고 마치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뻐데고 걷는 한적한 도로길..

어쩌다가 사진이 좋아졌을까? 내가 나를 모르니 남이 나를 어찌알까 마는 장화신은 발걸음은 신바람이 났다.

일과 집만 알았던 내게 찾아온 오아시스 같은 취미생활 내 삶의 활력소를 찾아서 고고씽이다~~

 

 

 

어릴적 크리스마 씰을 보고 따라서 그렸던 겨울풍경과 감미로운 글귀가 적힌 찻집 음식점의 모습들이 멋지게 다가왔다.

겨울이 오면 내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 만들어 보내볼까? 라는 마음이 일어났다.

촉촉히 젖은 시가 있는 음식점 간판이 내마음을 출렁인다.

 

 

보일듯 말듯 높이 쇠파이프로 가려진 운현궁 어린이집

어떤 사람들의 소행인고 종이컵 줄줄이 달아 놓은 못된 손목아지..

그래도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신선해 보였다.

 

 

문이 닫혔다.

빨리 온다고 달려서 왔는데

입구 매표소 언니에게 사정해서 들어가는 데 성공 높이 날아올랏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

룰루 무료로 살짝쿵 관람이다.

대신에 보답은 할꺼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운현궁[雲見宮]

운현궁 http://www.unhyeongung.or.kr/

지정번호: 사전 제257호/시대: 1864년(고종)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98-50번지

이곳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조(高宗)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잠저(潛邸)로서, 생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집이다. 홍선대원군은 이곳을 무대로 10년간 집정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했다. 서운관(書雲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을 따서 운현궁이라 불렀다.  1864년(고종1)에 노락당과 노안당을 짓고, 1869년(고종 6)에는 이로당과 영로당(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9호)을 세웠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홍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1912년에는 양관을 세워 손님을 맞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노안당은 홍선대원군이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며, 노락당은 안채, 이로당은 별당으로 쓰였다. 그 규모나 격식, 평면 모양으로 볼때, 사대부집이라기보다는 궁궐 내전에 가깝다. 홍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ㅐ면을 거쳐 손자 이준동에게 상속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 부분이 팔리면서 집의 규모가 크게 줄었다.

Designation: Historic site No. 257

Period:1864(lst year of ing Gojong's reign); Repaired in 1996

Location: 98-50, Unni-dong, Jongno-gu, Seoul

This is the house in which King Gojong, the 26th king of Joseon, lived before he acceded to the throne, It was owned by Heungseon Daewongun Yi Haeung, the father of Gojong, While staying at this house, Heungseon Daewongun ruled over the country for about 10 years, after taking control of state affairs in place of his son. Unhyeongung was so named after a pass where Seoungwan was situated. In 1864(lst year of King Gojong's reign), Norakdang and Noandang were built, and in 1869(6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Irodang and Yeorgnodang(Seoul Folklore Material No. 19)were erected. To facilitate.

going in and out of Changdeokgung(palace), Gyeonggeunmun and  Gonggeunmun were built exclusively for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r, respectively. But they do not remain today. In 1912, Yanggwan was built to greet guests. Noandang was where

Heunggeon Daewongun discussed state affairs. Norakdang and Irodang were used as the anchae(inner quarters)and the byeolchae(outbuilding), respectively. Considering the size, formality and the ground plan, Unhyeongung is similar to an inner palace rather than the house of a nigh ranking official. Following the death of heungseon Daewongun, the house was inherited by his eldest son Yi Jaemyeon and then his grandson Yi Junyong after. Following the Korean War, however, a considerable part of the house was sold, and therefore the size of the house was considerably reduced.(영어를 읽으며 표지판 글을 옮겨 담았습니다. 스페링이 오타가 난것도 있을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운현궁 입장 성공!

정말 짧은 시간에 이거 저거 구경하느라 발이 무척 바빴다.

이렇게 좋은데, 새소리가 잔잔하게 들리고 숲향기가 가득한 운현궁안에 이로당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두팔벌려 가슴으로 늦겨본다

운현궁 전체 안살림을 맡아 최고의 책임자 역활을 했던 곳 이로당 안주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노력하는 자는 성공할 것이라느 교훈을 주는 곳..

 

 

 

솟을대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로당으로 들어가서 솟을대문으로 나왔다.

 

 

 

이로당은 여자들만 살수 있게 만든 집이라 □ 자형 구조로 사방이 막혀있다.

금난지역이라 칭했다.

이로당 [二老堂]Io-dang

로당은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바깥 □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자' 모양으로 된 건물로 가운데 중정(中庭)이 있다. 노락당과 더불어 안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여자들만 살 수 있게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철저한 금남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당의 안주인은 운형궁 전체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One side of this square building enclosing a court is seven kan long, Like Norak-dang, it was an anch'a or an exclusive quarters for ladies.

As such, men were strictly forbidden to enter Iro-dong. The lady of Iro-dang ran household affair of Unhyeon-gung from this building.

 

 

 

이로당 뒤채에서 바라본 모습 우물이 있고 새소리가 듣기 좋다.

 

 이로당 뒤채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가득하다.

 

 

이로당[二老堂]과 ⑪이로당 동행각[二老堂 東行閣]을 돌고 나와 보게된 ⑫유물전시관

홍성대원군의 개혁과 외세의 침략등이 기록되어 보전되어 있다.

 

친영례 복식[親迎禮 服飾]

고종(高宗)과 명성왕후(明成王后)의 가례(嘉禮)중, 친영례시에 고종은 면복(冕服)을, 명성왕후는 적의(翟衣)를 입어쓰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조복(朝服)을, 부대부인(府大夫人)은 원삼(圓衫)을 입었다.

가례(嘉禮)란 왕실 혼례(婚禮)로서, 별궁(別宮)으로 사자(使者)를 보내 청혼하는 의식인 납채(納菜), 대궐에서 예물을 보내는 의식인 납징(納徵), 길일을 택하여 별궁에 알려주는 의식인 고기(告期), 왕비 책봉을 받도록 하는 의식인 책비(冊妃), 왕이 별궁으로 왕비를 맞으러가는 의식인 친영(親迎), 왕과 왕비가 서로 술잔 나누고 첫날밤을 치르는 의식인 동뢰(同牢)의 육례(六禮)에 의해 치러졌다.

그 후 왕실의 웃어른께 인사를 올리는 조현례(朝見禮), 백관의 하례를 받는 진하의례(進賀儀禮), 종묘(宗廟)에 고하는 묘현례(廟見禮)를 해하는 것으로 가례의식을 마쳤다.

Chinyeong Costume

Garye is a wedding ceremony involiving royal families.

The ceremony involves multiple procedures. Chinyeong refers to the procedure during which the king visits Byeolgung(a special palace designated for royal weddings)to see his wife, the queen.

During the proceeding of Chinyeong, King Gojong wore Myeonbok (the most elaborate royal costume worn by kings)while Queen Myeongseong wore Jeokui(the most elaborate royal costume worn by queens). Heungseon Daewongun(King Gojong's father)wore Jobok(official's ceremonial costume); Budaebuin(the wife of Heungseon Daewongun)wore Wonsam( a women's ceremonial costume).    

 

 

  노락당[老樂堂] 노락당 남행각[老樂堂 南行閣]

운현궁에서 가장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고종과 민비의 가래와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행사때 사용되었으며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노락당[老樂堂]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노안당의 정면 6칸, 측면3칸보다 상당히 크고 웅장하며, 툇마루 좌우에 방이 아홉칸이나 있을 정도로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고종과 민비의 가래와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행사때 사용되었으며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는 노락당 대청에 걸려있는 노락당기(老樂堂記)를 보면 알 수 있는데'노락당이 굉장히 높아 하늘과의 거리가 한자 다섯 치 밖에 안된다.' 는 뜻에서 노락당의 호화롭고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유굦ㄱ 개념 아래 조선시대 여성들의 주생활 영역의 안방으로 대표되는 운현궁의 주 건물이며, 특히 노락당 벽체에서 나온 그림과 글씨는 현재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물로 인정받고 있다.

Norak-dang

Ten kan(distance between pillars)wide across the front and three kan deep on the side. Norak-dang is much lager than the six by three kan Noan-dang and has nine rooms along the corridor. Largest of all the buildings in Unhyeon-gung(palace), such important ceremonies and events as the wedding of King Kojong and his Queen Min and 60th birthday of the royal family members took place here. It was here that the future Queen Min received her royal orjentation and preparations including proper manners before wedding.

The splendor of Norak-dang is well recorded in Notes on Norak-dang hung on the central wooden floored which says Norak-dang is so lofty that it is only 5 chi(about 15cm)short of heaven.

This main building was anch'ae or women's quarters created by Confucian values represented by the Three Bonds and Five Moral Rules governing human relations. The calligraphic works and paintings used as wall paper in Norak-dang are judged to be of considerable value.

명성왕후의 부대부인 생신 축하 방문

일반적으로 왕비는 궐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부모의 생신(生辰), 병문안(病問安), 상(喪)등의 제한저인 경우에 사가를 방문할 수 있었다. 명성왕후(明成王后)가 부대부인(府大夫人)의 생신을 맞이하여 세자를 데리고 운현궁(雲峴宮)을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명성왕후는 당의를 착용하고 부대부인은 평상복인 치마, 저고리에 마고자를 착용하고 있다. 세자는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사구삼을 착용하였고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은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전복을 착용하였다.

Queen Myeongseong Celebrating the Birthday of King Gljong's Mother

During the birthday ceemony of King Gojong's mother, Queen Myeongseong, with the crown prince, visited Unhyeongung Palace and had a good time.

 

④노안당[老安當]⑤노안당 서행각[老安當 西行閣⑧대문채: 중문[中門]

 

노안당[老安堂]

윤현궁에서 사랑채로 쓰였던 노안당은 대원군의 일상 거처였으며 파격적 인사정책, 중앙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국가주요정책을 논의했던 곳이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한식 기와집으로 처마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遮陽)을 단 수법은 오늘날 이 곳에만 남아 있는 특징이다.  '노안당'이란 현판은 '노자(老者)를 안지(安之)' 하며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으로 홍선대원군이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의 글씨를 집자 하여 만든 것이다.

말년에는 정권에서의 퇴진과 청나라에 납치되는 등 이곳에서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현재 노안당에 게시된 편액은 2006년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 106호 오옥진 가자장에 의해 모각되어 게시된 편액이며, 원 편액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Nong-dang

Noan-dang was sarangch'ae of Unhyeon-gung(palace)

Saranch'ac was the men's quarters in traditional Korean residences where the husband did reading and wiriting, met with friends and received guests.  It was Noan-dang that Regent Hungson-taewon-gun established his major reform policies, which included the appointment of higher official on merit alone, strengthening the power of the central government, closing down of private sawon or confucian shrine-academies across the country, and new dressing codes to ensure frugal and practical living.

Noan-dang is the only extant example of traditional tiled korean buildings with a large sun-shade supported by wooden poles from the eaves. Noan, the name of this building, meaning to make the old comfortable and at ease, was named by Regent Hungson-taewon-gun who found his life satisfying and omfortable after one of his sons became king.

The two Chinese characers for noan were selected from the writing of Kim Chong-hi(pen name Ch'usa)by the regent himself. He died in this building at 79 after an eventful life which included forced retirement from regency and kidnapping Ch'ing china.

The present tablet of Noan-dang is a replica made by the master engraver(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No.106 Oh Ok-Chin)with permission from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in 2006. The original is currently kept at the Seoul Museum of History.

 

② 수직사[守直舍]

수직사[守直舍]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

Sujiksa

Sujiksa to the east of the main gate was the quarters for stewards and guards of Unhyeon-gung(palace). Unhyeon-gung had a large number of guards and maintenance men including those detailed by the king as the estate was large and Regent Hungson-taewon-gun grew powerful after his son's ascension to the throne.

■ 평일 점심시간 무료입장

Free admission on weekdays for lunch

Time 12:00~13:00

정기휴일: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火)

운현궁 관람료 

어른 (65-74)

700원 

청소년(13-24) 

 300원

 군인(제복착용 하사이하)

 300원

단체(30인이상) 

 어른

 550원

청소년 및 군인 

 250원

 무료대상: 65세이상, 12세 이하의 자, 국가유공자 및 장애인 수첩 소지자, 공무수행자, 5.18 민주유공자, 참전유공자, 특수임무수행자, 국빈 및 외국사절과 그 수행자. 

 

운현궁에서 이희자님의 한글서예 초대전을 한다고 하네요~

관심있게 보시고 운현궁을 둘러 보세욤 ^^

비가 내리는 운치있는 날 6시 땡하고 들어가서 운현궁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왔다.

역사의 한면을 보는 듯한 읽으며 쓰며 기록해 둔다.

취미가 같아서 행복한 그녀둘의 나들이 우리 나라 아름다운 구석 구석을 찾아 떠난 지하철 여행기록~~

당일 지하철 여행

2013/07/15 - [수원여행] 화장실 문화의 세계로 탐험 해우재 화장실 문화공원

2013/07/15 - 좁은 골목길에 숨어있는 3.1독립운동 성지(聖地)대각사

2013/07/16 - 비내리는 7월 14일 운현궁의 이로당[二老堂], 노안당[老安堂], 노락당[老樂堂]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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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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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3.07.17 13:52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하 누리 2013.07.17 15:19 신고

      ㅎㅎㅎ 학교 다닐때 가보고 족히 20년은 훌쩍 넘은거 같아요..
      주변을 둘러 보니 볼거리가 많네요~
      몇일만 일하면 쉬네요, 주말계획은 세우셨어요?
      저는 깨벅쟁이들과 가까운 곳으로 갑니다.
      그날만 손꼽아 또 기다리는 중이에요 ㅎㅎㅎㅋ
      남은 오후 시간 화이팅 수고하세욤 ^^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쑥부쟁이 2013.07.22 12:40

    언제 이렇게 다.. 근사합니다.
    정신없던 사진과 궁이 정리되는 느낌.짱!^^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광개토여왕 2013.07.30 16:57

    안녕~ 사진이 더 깊어졌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날 잡아서 얼굴 한번 보게~

가족들과 떠난 강릉여행길 6시간을 차안에서 있었다.

정말 멀다 하면서도 남들이 보고 하는것은 따라 하고 싶은것이 우리들의 마음인가 보다.

꽃구경 만큼이나 감동적인 볼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선교장이다.

첫번째 코스로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인파속을 헤치고 들어가니 해설가가 열심히 선교장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계셨다.

봄맞이 하는 강릉의 아름다운 1965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20세기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이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이 1703년에 건립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안채와 열화당, 행랑채, 동별당, 서별당, 활래정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대에 걸쳐 3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http://www.knsgj.net 강릉선교장 홈페이지

http://blog.daum.net/parkah99/15962339 ☜강릉선교장 숙박체험하신 우수블로거님

 

보고 나오는 차 들어가는 차들로 꽃축제의 모습은 북적거렸다.

 

 

김시습기념관이 살짜기 꽃과 함께 보이고 봉고차 한대가 그곳을 가로막고 있어 아쉬웠다.

 

 

선교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배다리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고 현판에 적인 글이 선교장에 대해 기록되어 있어 읽고 들어가기 좋았다.

각종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드라마는 궁, 황진이, 바람의 화원, 공주의 남자 외가 촬영되었고, 영화는 물레야 물레야, 식객, 대원군 외 다수 KBS 2011년 신년특집, 1박 2일, 외국인 근로자 가족상봉들이 방송된바있다.

 

강릉 선교장/Gangneung Seongyojang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重要民俗文化材 第5互/Important Folklore Cultural Properties No.5

선교장은 효령대군[孝零大君]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무경[茂卿]이내번[李內番]이 1703년에 건립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안채˙열화당˙행랑채˙동별당˙서별당˙활래정 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대에 걸쳐 3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965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바 있다.

Seongyojang is a typical upper-class residence of the late Joseon dynasty. It was built in 1703 by Yi Naebeon, a 11th generation descendant of Prince Hyoryeongdaegun.

The house comprises an Anchae(the women's quarters), a Yeolhwadang(the women's quarters),a Haengrangchae(servants quarters), a Dongbyeoldang(east wing men's quarters), a Seobyeoldang(west wing library), a Hwallaejeong(pavilion)and an annex building.

Seongyojang, though 300years(10 generations)have passed since its erection, preserves its original forms, and succeeds to the fame and tradition of Sadaebu(upper-class)house of the Joseon dynasty. Seongyojang was designated as a national property in 1965, and Joseon as the Korea's best traditional house in the 20th century.

 

활래정(活來亭)/전통다도체험

 

활래정活來亭/HwalraeJeong

1816년 건립하였으며,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 나간다는 활수[活水]의 의미다.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이 있어서 근대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과 조정미를 갖추고 있다.

The building was built in 1816, and the clean water continuously flowing frm thewestern part of 

Taejangbong passes through a pond and enters into Gyeongpo Lake.

The pavilion floating on the water, Ondol room, and tearoom are the nation's unique architectural fom boasting of landscaping beaute.

 이곳은 현재 체험객들의 다도체험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들 못 보고 지나친다는 가장 오랜된 소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주셔서 듣게 되었다.

 

 

 

 

 

이른 봄나들이, 어느덧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바람에는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었다.

풍경에 홀리고 문화에 취해 정신없이 선교장 주변숲속을 누비고 다녔더니 목이 말랐다.

많이 걸은 자에게 따라오는 피로감 그러나 눈은 참 즐거웠다.

 

 

 

잡힐듯 말듯 한 담장너머의 꽃

 

 

 

 

목공예방과 수예품판매장으로 직접 제작 판매를 하고 있는데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곳 주변으로 윷놀이, 널뛰기, 투호, 제가치기 등의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왕벗꽃나무

왕벗꽃나무는 제주도 남해쪽에서 자생하는 토종국산 나무로 여기서 일본으로 건거간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왕벗꽃나무 아래서 언니와 기념사진 한장 담았다.

 

 

초가 草家/Thatched House

1830년경 지어진 선교장 경내의 가람집으로 선교장의 곳간채를 관리하던 집사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선교장 뒤편을 드나드는 출입자를 통제하던 곳이다. 지금은 한옥숙박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This thatched house was built in 1830 as the residence for the butler responsible for the storehouse. It also served as a security office and was used to control people who sought access to Seongyojang from the rear of the building.The house s now used asa hanok atype of tourist accommodation.

 

한국전통문화 체험관/한옥숙박체험

 

한국전통문화체험관 韓國傳統文化체驗館/Korean Traditional Culture Experience Hall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미녹문화재 제 5호인 선교장 경내에 전통 한옥 체험관을 새롭게 신축하여 한국의 전통 생활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문화체육관광부, 강원도 강릉시에서 지원하여 2002년도에 시설하였다.

지상은 전통한옥, 지하에는 현대식 샤워실, 주방, 식당, 세탁실 등 40-60명이 단체로 투숙하는 장소로 내부의 방 사이를 열면 확 트인 온돌구조로 되어 있어서 단체의 모든 체험활동을 이곳에서 할 수 있다. 500여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도 있다고 한다.

This experience hall was newly built in Seongyojang, Important Folklore Cultural Properties No 5, with the support of th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Gangwondo, Gangneung City in order to inform the traditional livig culture of Korea at home and aboad in 2002.

한국전통체험장을 돌아 언덕을 내려가는 길 우측에는

자미재라는 창고를 개조하여

전통음식만들기 체험장Traditional Korean food making experience

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지당

서별당 전면의 건물로 집안 일을 도와주던 여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앞마당은 안채로 들어가는 재물을 확인하던 곳으로 받재마당이라고 한다. 이곳은 의상, 자수 등의 체험장으로 활용하며, 체험객의 숙박으로 사용된다.

 

 

 

안채 주옥

안방마님과 여인들의 거처

선교장 300년 최초로 지은 건물로 선교장의 가승 음식과 한과 등을 만들며 체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열화당(큰 사랑채)과 중사랑

 

열화당 Yeolhwadag

1815년에 건립된 건물ㄹ서 선교장 주인 남자의 거처이다. [일가 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말기 러시아식의 건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준 것이다. 현재 작은 도서관으로서 공개되고 있다.

1815년에 지어진 건물로서 건물의 벽이 모두 문으로 지어진 것이 특색이다. 온 집안의 식구들이 이곳에서 정다운 이야기(열화)를 나누며 지내자는 것이 선교장 열화정신의 근본이다. 이곳은 예절, 서예, 충효사상의 이야기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This was the place of male master of Seongyojang, and the terrace the building was built by the Russian Consul as the present at the end of joseon Dynasty.

중사랑中舍廊/Jungsarang

선교장 손님맞이에 주로사용된 건물이며 전국의 학자, 풍류객들과 교분[交分]을나누던 곳이다.

중사랑은 체험객의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This is the place where the quests who visted Seongyojang were received.

 

 

초정(녹야원)草亭(蘆野苑)Chojeong Pavilion

사랑채인 열화당 후원의 정자로서 1820년경 지어졌다. 소나무숲과 주변 원림 속에서 시문을 짓고 책을 읽던 곳이며, 또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며 검소와 베품의 덕을 수련하던 곳이다. 후원에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되어 녹야원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원추리의 야생려과 번식력이 선교장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Chojeong Pavilion was built in 1820 in the rear garden of Yeolhwadang, the outer quarters of Seongyojang. The garden is called Nokyawon, meaning 'the garden of orange day lilies' because it is adornbed with this ornamental plant. The garden's name also represents the hope that the house wouldbe as prolific as the flower itself.

사랑채 뒤의 정원으로 초정이 있다. 초정과 노송 그늘아래서 시문을 읊고 정원에는 상사화, 붓꽃, 원추리등을 심어서 자연과 함께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행랑채(한옥숙박체험)

문간채로서 선교장 모든 건물의 전면에서 웅장함을 볼수 있다. 지나던 선비와 풍류객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전해진다.이곳은 체험객들의 숙박이 가능한 곳이다.

 

 

선교장을 다 돌고 내려오다 까만피부에 하얀이를 들어낸 외국인 단체를 만났다. 세계 각국으로 기념사진 담는 것은 같은 거 같다.

옆에서있다 나도 한컷 담아왔는데, 어디분들이냐고 해설가님께 여쭈니 케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Kenya teacher Pace Maker movie appearances] 선생님이라고 하신다.

오른쪽 끝에 검정바지에 회색자켓을 입은 선생님은 한국에 나오신지 3년 되셨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셔서 깜짝 놀랐다.

페이스메이커영화 출연하신 분이란다. 영화가 급 보고 싶어짐..

 

 

외별당

맏아들의 신혼살림이나 작은아들의 분가이전 혹은 손자들도 사용하였고, 현재는 내실로 사용하고 있다.

 

동별당

안채 동쪽의 별체

안채 부속 건물로써 집안 손님들의 거처로 사용하던 곳이다. 규방문화의 이야기방으로 활용하며, 체험객의 숙박이 가능한 곳이다.

전통가구들로 진열이 되어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다.

 

 

행랑채의마루에 앉아 쉬며 해설가님의 번역설명을 들으시는 케냐학교선생님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화창한 봄날 조카들과 걸어본 강릉선교장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 본다.

 

 

보이는 건물은 연지당 서별당의 전면의 건물로 집안일을 도와주던 여인들의 숙소이며,

서별당은 안채 서쪽의 별채로 집안 식구들의 공부방있다.

누마루에 서고가 있고 시원한 대청과 온돌방이 있어서 집안의 온 식구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던 곳이다.

 

연지당과 서별당이 있는 넓은 잔디밭에서 기념사진을 담고,

못처럼 아이들과 아빠가 교감을 하는 모습들이

다정해 보이고 가정의 달 5월이 온것만 같은..

평화로운 모습을 볼수 있었다.

나두 언니와 기념사진 한장 남겨본다.

 

 

 

 김시습기념관 주변 벗꽃길을 걷기 위해 나오는 길에 숲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봄날 봄마중 좀 멀기는 하지만 20세기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을 보는  여행도 해보세요

못가시는 분들을 위해 하누리 왕창 담아 왔는데 바빠서 오늘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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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 강릉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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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 누리 트랙백 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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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요롱이+ 2013.04.18 18:15 신고

    덕분에 너무 잘 보고 갑니다^^
    남은 하루 의미있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봉명동안방극장 2013.04.19 08:45 신고

    그야말로 봄느낌이 완연히 느껴지는 사진들입니다^^
    지인분과 같이 찍은 사진도 좋아보이시고...

  3. addr | edit/del | reply 2013.04.19 08:46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하 누리 2013.04.19 09:20 신고

      일이 바빠서 3일에 걸쳐 만들었네요 ㅎㅎ
      더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정신 없다는게 이유..
      봄이라 일이 무척 바빠요~~
      올두 화이팅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