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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문화재

[강원도 강릉]금오신화를 쓴 김시습 金時習記念館을 둘러보다.

 김시습기념관은 강릉 선교장 옆에 있다.

벗꽃길따라 걸어서 꽃구경 하기 좋고, 담장너머로 살포시 보일락 말락하는 김시습기념관의 정교함에 반했다.

김시습이란 누구일까? 매월당 김시습(1434∼1493)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금오신화]를 쓴 천재문학가다.

'금오신화'는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소설 형식을 확립시킨 작품으로,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등 5개의 단편을 담고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년 ~ 1493년)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다 승려가 되었으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일설에는 그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서울 노량진에 암장했다고도 한다. 이계전(李季甸), 김반(金泮), 윤상(尹祥)의 문인이다.


2013/04/17 - [강원도 강릉]중요민속문화재 5호이며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선정된 강릉선교장의 봄 풍경

http://blog.daum.net/yeonsili/12341328 김시습기념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벗꽃길을 걷는길 삼삼오오 짝을 지어 팔짱끼고 걸어감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꽃잎이 휘날리어 멋스러움을 자아냈다.

선교장 주변이 매표소인데, 김시습기념관도 표를 끊어야 하나  다시 갔다 오기가 귀찮아 담장넘어로만 보았는데 무료라고 한다.

선교장 입장료는 3천 원이지만 김시습기념관의 입장료는 무료이다. 100평 정도 되는 아담한 전통 한옥 한 채가 기념관의 전부다. 이렇게 안타까울수가 없다 코앞에 두고 보지 않고 담장너머에서만 와 멋있다 이러고 왔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멋진 벗꽃길을 살방거리고 걸어 보았으니 다행이다.

 

 

금오신화
 (조선중기 문신 윤춘년이 필사한 필사본)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다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문을 듣고 번민한 끝에 통곡을 하고 책을 불살랐다고 알려져 있다.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 경기도 양주(楊州)의 수락(水落), 수춘(壽春)의 사탄(史呑), 해상(海上)의 설악(雪岳), 월성(月城)의 금오(金鰲) 등지를 두루 방랑하면서 글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그는 관서·관동·삼남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했는데, 〈매월당시사유록 每月堂詩四遊錄〉에 그때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31세에 경주 금오산에 도착하였다.
 
47세에 안씨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고 유학자를 만났을 때는 불도를 말하지 않았다. 세조 때에 변절하여 6신(六臣)을 고한 영의정 정창손을 길에서 면박을 준 일이 있었다. 세조 정변 이후부터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와 사귀기를 꺼리며 두려워하였으나 종실(宗室)인 이정은(李貞恩)과 남효온·안응세(安應世)·홍유손 4명만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신숙주와 정인지, 정창손의 행차를 보게 되면 서슴없이 욕설을 날리며 조소하였다. 한편 그가 만나 교유하던 인물로는 서거정, 김담, 김종직, 남효온 등이었다.

1472년에는 경기도 양주의 시골에 정자를 세우고 조그만 화전을 일구면서 시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언젠가 서강(西江)을 여행하다가 한명회(韓明澮)의 시를 보고 운을 바꾸어 조롱하기도 했다.
                          

 한명회의 시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김시습의 시         靑春亡社稷(청춘망사직)  /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白首汚江湖(백수욕강호)  /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그의 해학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배꼽을 잡고 웃었고 이후 사람들은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매월당 김시습은 조선 세종 17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성균관 북쪽 泮宮里)에서 태어났지만, 본관이 강릉이고 모친(선사 장씨)이 돌아가신 후 3년간 강릉에서 시묘살이를 한 인연으로 강릉의 유지들과 강릉김씨의 각 종파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出斂)하여 강릉에 김시습의 기념관을 세운 것이다.

강릉김씨의 시조 주원은 신라 김춘추(태종무열왕)의 6대손이며 김시습은 김주원의 22대손이다. 또 주원의 36대손이 이상(李箱) 김해경(金海卿)이다. 강릉김씨의 각 계파에서는 시제(時祭) 때 반듯이 매월당 김시습에게 제사를 지낸다. 매월당은 5세에 세종대왕 앞에 나가 즉흥시를 지을 정도로 신동(神童)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담장너머로 보이는 김시습기념관 외부모습  벗꽃이 만개하여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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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아빠와 엄마 둘둘 셋넷..

발걸음은 가볍고 이야기 소리가 줄을 잇는데 한쪽에서는 차량들이 밀려 짜증을 내고 계셨다.

나와서 걸어 얼마나 좋은데 소리가 입가에서 맴맴거렸다.

 

 

김시습기념비가 좌측에 있다.

길을 건너 담아 보았다.

 

 

왔던길을 되돌아 봐주고, 벗꽃길이 아름답다.

 

 

주변볼거리

http://blog.daum.net/zcvbn/16138700허난설헌 -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

mkm3987.tistory.com/539 초당마을 소나무숲, 허난설헌 생가공원

 

 

 

매년 꽃들을 꿈속으로 초대했던적이 있는데 세월이 약인가봐요

세월이 흐른 지금은 원없이 꽃구경 하고 살 수 있어 행복하네요~~

 

김시습 기념관 담장으로 핀 벗꽃을 담아놓아요..

카메라의 기능 여러가지로 연습을 해봤습니다.

 

가족들은 이런 문화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저찍사 저거 언제오려나 저만 기다립니다.

저는 저 담장을 홍길동이가 되어 뛰어 넘고 싶은데..

참 ..

그래도 이곳을 데려와준 조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군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400년 전통 초당마을 두부를 맛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