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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강원도

울산바위 아래 또 다른 아름다움 계조암석굴(繼祖庵石窟)

 2012년 2월 28일 한적한 평일날 울산바위를 담아보고 13년 6월 13일 평일날 울산바위를 다시 다녀간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계조암석굴을 둘러보았다.

 

2013/06/19 - 평일날 갤럭시 S3로 담아보는 설악산 울산바위 

2012/12/13 - 울산바위 암벽등반 

2012/02/28 - 한적한 평일날 담아본 울산바위

울산바위를 등산후 흔들바위로 내려와 자연동굴법당을 둘러보았다.

돌로된 신기한 법당에서 들어가 두손을 가지런히 하고 절법에 예를 갖추며 기도를 드리는 시간

계조암 석굴에서 만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담으며..

 

 이정표가 안내하는 대로 걸어 가본다.

구비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신비로움 갤럭시 S3는 신이나고 나도 신이난다.

 

 

 

자연과 하나 된듯한 동굴법당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

내가 걸어온 길을 보고 아래서 위를 처다보는 순간

높다.

저 높은 곳으로 향해 전진하기를, 주저 앉지 말고 힘내라 인생아..

 

 

불전함에 돈을 넣고 비는 마음

간절함

이루어져랏..

소망한다.

 

 

 계조암석굴(繼祖庵石窟)

계조암은 신라 652년(진덕여왕 6년)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은 이곳 석굴에 머물면서 향성사(香城寺:신흥사)를 창건하였다. 동산(東山),각지(覺知), 봉정(鳳頂)에 이어 의상(義湘), 원효(元曉)등 조사(祖師)의 칭호를 얻을만한 승려가 이어져 수도하던 도장이라 하여 계조암(繼祖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창건이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신흥사사적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1890년(고종27년)응화(應化)가 삼성각을 세웠으며, 1908년 동암(東庵)이 단청을 하고, 동고가 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석굴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석굴안에 봉안된 부처님과 삼성각에 모신 나반존자상은 특히 영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석굴 앞에는 문 역활을 하는 쌍용바위가 있고, 쌍용바위 앞에는 100여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반석이 있어 '식당암(食堂岩)' 이라 부른다.

식당암 머리 부분에는 흔들바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우각석(牛角石)이 있다. 우각석은 원래 두 개였는데, 한 풍수 학자가 불가(佛家)의 영기(靈氣)가 넘쳐 흐름을 시기하여 한개를 굴려 떨어뜨렸다고 한다.

석굴법당은 목탁이라 불리는 바위에 자리 잡고 있어 다른 기도처보다 영험이 크다고 하는 목탁바위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Kyejoam(Hermitage)

A leaned Buddist priest by the name of Jajang built this hermitage in 652(the 6th year of Queen's Jlnduk reign in the Silla dynasty).

It was originally the place where the three Buddhist Chosas(founders of the Buddhist sects. Ja-Jang. Tongsan, and Pongjong)

practiced asceticism before this hermitage was built. Later, Saint Wonhyo and priest Usang practiced asceticism in the same hermitage. The hermitage is located in a cave at the foot of a large boulder named Moktak. On the wall of Kyejoam was the engraving "Kyejoam Kungnakchon"(the Hall of paradise).

 조용한 사찰에 오랜시간 머무르며 108배의 절을 하고 갑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가족들의 건강과, 남편의 안전한 암벽등반을 기원합니다.

 

 

석굴에 대한 글을 읽고 내려가는 길..

영엄한 기를 얻고 간다.

 

 

흔들바위를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은 곧은 마음과도 같은 바위, 그 바위에 새겨진 한문으로 된 이름석자들이 즐비하다.

설악산 흔들바위는 외설악의 설악동 신흥사에서 내원암을 지나 울산바위 방향으로 올라가기전 계조암 바로 앞마당에 위치한 바위다.

위치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170번지이며, 설악산 흔들바위는 중요지방문화재 37호 흔들바위 지정되어 있다.

흔들바위에 대한 전설이나 유래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없어 아쉬웠다.

 

속초 설악산 흔들바위의 전설

옛날 옛날 이마을에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오빠는 어찌나 힘이 센지 이 마을 사람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성이 양씨인 이들 오누이는 어느 듯 세월이 흘러 두 오누이는 장가들고 시집갈 나이가 되어 동생 양처녀도 얌전하고 천같이 이뻤으며 오빠는 동생을 좋은 집에 시집보내는 일이 걱정이었고, 동생은 오빠가 빨리 장가를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어느날 아래마을 부잣집에서 양처녀에게 청혼이 들어와 쾌히 승낙하고 이듬해 봄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오빠는 더욱 열심히 일하였고 한푼이라도 더 많이 벌어서 동생의 혼수마련을 많이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동생이 시집가는 길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동생이 건너가기 편하도록 큰 돌멩이를 들어다 징검다리를 놓았다. 그런데 그해 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나 모든 장정들이 전쟁터에 갔고 양 총각도 다른 장정들과 전쟁터에 가게 되었다. 동생 결혼식을 몇달 앞두고 전쟁터에 나가는 오빠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오빠는 결혼식 전에는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누이동생과 헤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3월이면 돌아 오겠다던 오빠는 2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고 아랫마을 총각은 혼례 올리자고 하지만 양처녀는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는 식을 올릴 수가 없다고 거절하면서 날마다 매봉에 올라가 높은 바위에 앉아 오빠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랫마을 총각은 기다리다 못해 다른집 처녀를 아내로 맞아 들이고, 그렇게 1년이 또 지난 어느날 매봉바위 위에 올라 앉아 오빠를 기다리던 양처녀는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몇일 후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오빠는 장수가 되어 돌아 왔으나 그리워 하던 누이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로 부터 누이의 소식을 전해들은 오빠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 슬픔에 빠졌다. 가엾은 동생의 한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몇 날 몇일을 식음도 전패한채 바위를 치며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때 양장사가 바위를 내리쳐 큰 바위가 두동강이 났으며, 그 뒤로 이바위는 바람만 불어도 흔들흔들 거렸다고 전해진다. (인터넷 검색 자료 인용)

 

계조암으로 올라가는 방향의 흔들바위다.

http://blog.daum.net/sane8253/177 울산바위 가을의 모습 다녀오신 분이 계셔서 링크걸어봅니다.

 

슬픈전설을 가지고 있는 흔들바위 여러번의 설악산 흔들바위를 다녀갔어도 흔들바위의 유래는 찾아볼 생각도 안했었는데 오랜시간 블로거를 하다 보니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전설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냥 나 등산하고 왔어 보다는 그곳의 유래와 전설을 한번씩 읽어 봄도 다녀온 의미 추억이 새록거릴듯 하다.

관계자 분은 우리나라 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관광으로 들르는 설악산인데, 흔들바위의 유래 위치 정도는 기록해 놓으셨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