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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문화재

[충남논산 여행]3백년 선비의 집 명재고택 사랑채에서 윤완식 선생이 들려주는 고택이야기

 논산명재 고택은 대표적인 호서지방의 양반가옥으로서 조선시대 중기때 상류층의 전형적인 살림집이다.

 건축물 남쪽에는 넓고 평평한 바깥공간이 있는 그 곳에 네모진 연못이 있고, 조선시대 전형적인 수공간(水空間)인 방지원도(方池圓島)로 조성되어 전통적인 연못의 기법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대문에서 안채가 쉽게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은 외부사람의 조심스런 접근과 내부사람의 독립성(Privacy)을 고려한 완충적인 공간으로 거부감 없이 지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3백년 향촌 사대부가 선비의 집

명재고택

 

 

 사랑채 디딤돌 앞에 있는 해시계

굵은ㅡ 표시 좌측이 동쪽 우측 서쪽이며 이곳에 막대를 꽂아 해시계로 사용했다고 한다.

 

ㅡ자형의 대문채에서 전면에서 두번째 칸에 대문이 있어 외부 공간에서 들어서려고 대문을 열면 대문에서 안채가 보이지 않고 막힌다.

문틈으로 보이는 가죽신으로 누구인지 확인을 하고 문을 열어 줬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막힌 대문 공간을 들어서면 우측의 공간이 안채를 향하여 열려있다.

 

안채 마당으로 들어서면 경□자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다시 六자형의 대청과 퇴가 마루로 연결되어 자우 공간의 독립성이 확보되어 있다.

안채에서 넓게 자리잡은 대청은 제사를 위한 제청 및 초례청과 가족들의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대청에 북쪽은 세 칸 기둥사이 바라지 창이 있어 밖으로 나갈 수 있고 창을 열면 경사진 언덕에 정겨운 장독대가 보인다.

 

 한편, 사랑채 공간도 안채와 떨어져 독립성을 주면서도 안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 논산명재 고택의 지혜이며 멋이다.

전면의 농토와 정원을 바라 볼 수 있는 위치에 직사각형의 ㅡ자로 평면이 대문채의 동쪽과 사랑채의 북쪽을 연결하여 안채 마당을 통과 하도록

되었다. 온돌방인 큰 사랑채 중심으로 서북쪽에 작은방이 있고, 동 남 서면은 마루로 둘러져 있다.

사랑채의 한편에는 2칸 누마루가 있고 2칸의 반이 있으며 방의 앞과 옆으로 마루가 달려 있다.

 

 

 명재윤증선생

명재윤증은 팔송(八松)윤황(尹惶)의 손자이고, 노서(魯西)윤서거의 아들이며, 자는 자인이고 호는 명재이며, 본관은 파평인(坡平人)이다.

명재윤증은 1629년 (인조7년)부터 1714년(숙종 40년)사이에 살다간 조선때의 학자로 유계(兪棨),권시, 김집 송시열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 수학하였으나 아버지와 같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밝았다.

그리고 산촌에 묻혀 학문과 덕을 쌓기에 전념하니 그 덕망이 당시 제일이었고 모든 선비의 흠모의 대상이 되어[백의 정승]이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사랑채에서 윤완식 선생이 들려주는 고택이야기

 

 

 미닫이 여닫이문

사랑채 큰방과 작은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할 수 있는 방문은

다른 가옥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누마루의 창문은 4분합 들 문으로 문을 들어 천정의 걸쇠에 걸면 창틀의 규격이 1:1.618의 이상적인 황금비율로 되어 있고

좌측, 모퉁이에 아궁이가 있고 그 위에 누마루가 있어 사랑채의 평면에 등고를 주고 촤측 마루 공간 측면은 벽과 창으로 전면은 세칸 무도 개방되어있다.

 

 

 

 

 

마당 한켠으로는 파씨가 자라나고 있고, 앵두 나무에서는 앵두가 익어 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 뒷뜰 느티나무에서 내려다 본 명재고택

 

 

 

 

 

 

 

 

 

 

종손이 들려주는 명재고택이야기였습니다.

이웃님들과 함께 듣고자 동영상으로 담아왔어요.. 시간 나시면 아이들과 들으면 좋을듯 하네요..

 

황금연휴 잘 보내고 일상으로의 희귀

날씨가 참 좋은 아침이네요, 한주도 힘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