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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문화재

좁은 골목길에 숨어있는 3.1독립운동 성지(聖地)대각사

지하철 여행 두번째 코스 비가 안왔으면 수원일대를 돌고 싶었는데, 발길을 돌려 종로로 나왔다. 1호선을 타고 내려 종로3가 하차 안국역방향으로 나와 어디를 갈까를 하다 목적지가 인사동이었는데, 다른 이정표를 보게 되고 행선지가 변경되었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보는 날 주변화단에 핀 꽃에 멈추고, 새로운 재미진 상호에 멈추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새로운 더 큰 모습이 다가오면 환호를 치고 달려간다.

 그냥 사진이 좋은 두여자의 하루는 신났다. 

 3.1독립운동 성지(聖地)대각사

대각사는 민족해방운동을 위하여 용성(龍城)스님이 세운절이다. 용성(龍城)스님은 48세인 1911년 부터 1940년까지 빼앗긴 조선독립을 위하여 온몸을 던졌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열반하실때까지 민중의 깨우침을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일체치하에서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전체를 다 던지고 거기에 전념하였다.

용성(龍城)스님은 조선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하여 매진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서울사동에서 선불교 교화사업을 맡아 일하면서 봉익동 1번지 일대를 사들여 독립운동의 성지 대각사를 세우고 백범김구선생을 만나게 된다. 1912년 이때 김구선생의 나이는 32세, 용성(龍城)스님은 49세이다.  1919년 김구선생은 해주에서 대한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인천감옥으로 이관되고 거기서 탈옥한다. 그리고 대신 부모가 투옥되고 백범은 삼남으로 도피, 그해 늦가을 마곡사(魔谷寺)에서 스님이 되고 園宗(원종)이란 법며을 얻고 3년을 거기서 수행하였다. 금강산 평양 대보산 영천암등에 기거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다시 환속하게 된다. 그 후 원종 (園宗)김구 선생은 서울에 오면 언제든지 용성스님이 있는 대각사에 머물며 용성스님의 영향을 받아 우리민족 살릴 대원(大願)을 세우고 보현행원을 실천할 행자가 되기를 스스로 다짐하였다. 후에 김구선생은 상해로 망명하게 되었고 용성스님은 김구선생에게 도깁자금을 전달 하곤 하였다.

용성(龍城)스님은 1916년 봄 만해(卍海)스님을 불러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자주 묻곤 하였다. 만해선사는 서울에 있을 때는 주로 대각사에 머물면서 용성(龍城)스님께 시국돌아가는 말씀을 나누고 차후 거사를 계획하였다고 한다. 그때쯤 손병희선생 등 많은 애국지사들은 조선독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물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라에서는 영국 미국 러시아 등에 밀사를 보내 독립운동을 하고 또 미국에서는 이승만이 조선독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일을 할 때였다.

용성스님은 1919년 3월 1일에는 민족대표 33인중 불교대표로 참여하여고, 이것을 문제삼아 2년여 간의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갖은 옥고를 다 치렀다. 출소 후 용성스님께서는 경전 번역과 전법, 그리고 은밀히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 경남 함양의 화과원(華果園)운영, 만주 용정에 27만여 평의 농지를 구입하여 화과원(華果園)을 운영, 잉여농산물은 모두 독립자금과 만주독립군의 식량으로 썼다고 한다. 그런 일로 후일 1931년에는 대각사가 일본 조선 총독부에 재산몰수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으나 일본의 조선박해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조선해방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용성스님은 끝내 조선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0년 음력 2월 24일에 대각사에서 열반하시었다. 다비식은 일본경찰으 철저한 방해와 수색 검열등으로 제자 며분만이 스님의 다비식을 조촐하게 치렀으며 스님의 사리탑은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용탑선원 산록에 세워졌다.

이곳 대각사는 용성조사님 전법과 열반의 땅이며 3.1독립운동의 성지이다. (표지판의 글을 옮겨 담았습니다.)

표지판에 기록되어 있는 글을 읽어 내려가며 아... 이곳에 숨은 보물이 있었구나..

서울도 볼거리가 다양해 암만~~

 Mahabodhi, Temple, the mecca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on March lst, 1911

Mahabodhi Temple was built by a Buddhist Monk, the Zen Master, Yong Sung, for the independece of Korea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He devoted himself to the cause at the age of 48, fro 191 to 1940.

The Zn Master, Yong Sung bought te land t build the temple, which became the heandquarters of the Inddependence movement, In 1912, the Zen Master, Yong Sung met Mr. Kim Gu, who was 32 yeas old at the time. In 1919, Kim Gu was imprisoned for his active participation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He escaped from prison and later becamean ordained Buddhist monk at Magok Temple where he practiced for 3 years before he became a layman. Kim Gu stayed at Daegak Temple whenever he was in Seoul. Having beengreatly influenced by the  Zen MKaster. Yong sung, Kim Gu decided to dedicate his life to the Independence of Korea. When Kim Gu was exiled to Shanghai, China, the Zen Master, Yong Sung Provided the funds to support Kim's activities.

On March lst, 1919, the 33 representative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including the Zen Master, Yong Sung, declared Korea's independence in a park near Mahabodhi Temple; he was imprisoned for two years as a result. Upon his release, the Zen Master, Yong Sung continued to secretly take part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while translating Buddhist scriptures and teaching the Dharma to the public. He also purchased an orchard in Hamyang, Kyungsang Province and another one in Yongjung, Manchuria to raise money to support the Independence Army in Manchuria, In retaliation, the Japanese confiscated private property owned by Mahabodhi Temple in 1931.

The Zen Master. Yong Sung passed away on February 24th, 1940 at Mahabodhi Temple. Korea was Independence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in 1945, His relies(Sari)are preserved in Haein Temple in Hapchon, Kyungsang Province. Mahabodhi Temple is a meca of the Buddhist teaching and the Nirvana, the March Ist  Independence Movement.

 

굳게 닫힌 문! 비는 내리고 우산을 쓰고 위로 목을 쭉 빼고 하늘을 보니 대각사 좌측으로 범종각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속안을 구경하고 싶은데, 절도 하고 가고 싶은데 닫혀있다.

밖에서 한참을 맴맴 거리다 간다.

 

 

대각사라는 현판이 눈에들어왔다.

정교한 누각의 아름다움

대각사는 민족해방운동을 위하여 용성(龍城)스님이 세운절이다.

 

 

 

ISO를 잘 못 맞췄나 사진이 흔들렸다.

잘 담았으면 정말 멋있었을 텐데..

 

 

우산쓰고 카메라에 비 안맞게 하느라 다른거 신경쓸 겨를이 없었더니 사진이 엉망징창..--;;

 

 

작디 작은 문 틈사이로 렌즈를 꼽고 담아진 모습

빛바랜 낡은 사진 한장 보는 느낌이 난다.

 

작은렌즈로 스님의 허락도 없이 몰래 담아온 대각사의 아름다움

비내리는 날 운치있었다.

좀더 노력해야 멋진 사진을 담아 내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