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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경남.경북

[대구 여행]대구 근대로의 시간여행 대구근대역사관

http://artcenter.daegu.go.kr 대구 근대 역사관

대구근대역사관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관 건물은 원형이 잘 보존돼 2003년 대구시 유형 문화재 제 49로 지정됐습니다.
2008년 대구도시공사가 이 건물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증했으며 이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돼 2011년 1월 문을 열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박물관에는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구에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전래되어 교회를 통해 서양음악 활동이 이루어 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구 출신의 대표적 제 1세대 서양음악가로는 박태원, 김문보, 박태준, 추애경 현제명 등이 활동하였고, 특히 박태준은 동요 『뜸북새』와 가곡 『동무생각』등을 작곡 했으며, 현제명은 가곡『고향생각』과 오페라 『대춘향전』등 많은 곡을 남겼다.

그리고 전통음악가로는 관기 염롱산을 비롯하여, 명창 김추월, 김초향, 박록주, 이소향, 신금홍,김소향 등이 전국적으로 활동하면서 유성기음반을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Christianity reached Daegu well before other regions of Korea. This gave locals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new and previously unheard Western music. The representative western style musicians of Daegu were Te-Won park, Mun-Bo Kim, Te-june Park, Ae-Kyung Chu and Je-Myung Hyun, etc during the colonial time by Japanese. Additionally, Te-June Park is well known for composing his famous song 'Yearning for a Friend'. Je-Myung Hyun composed a lot of songs including 'Thinking of Home', a classical song, and 'Chunhyang-Jeon', the opera. However, the representative traditional style of musicians of Daegu were Long-San Yeom, a Giseng, Chu-Wol Kim, Cho-Hyang kim, Lok-Ju Park, So-Hyang Lee, Gum-Hong Shin, and So-Hyang Kim, great traditional singers. They left the phonograph records while they played at that time. (박문관 자료인용했습니다.)

주변에 볼거리 2012/05/10 - [대구여행]55년전통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하이마트 고전음악감상실 

 

 

 

대구중부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근대역사관 건물 모습입니다.

 

  

 

 

 

 

 

 

 

 

 

 

 

 

 

 

 

 

부영버스영상체험실

1929년 7월 1일 처음 도입된 대구 부영버스를 타고 근대 대구거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부영버스는 5개의 노선이 있었는데, 본 체험영상은 4호선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근대교육의 산실 대구

Mondern Education/ 近代教育のパートナー大邱

대한제국 시기 대구에는 1899년에 설립된 대구 최초의 근대적 학교인 사립달성학교를 비롯하여 계성학교(1906년), 신명여학교(1907년)등 종교계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민족교육과 계몽운동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교육쇄신을 구실로 사립학교를 탄압하면서, 대구공립보통학교(1905년), 덕산심상소학교(1906년)등 공립학교와 일본인 전용학교를 설립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소위 문화정치의 시행으로 보통교육과 실업교육에 치중하여 대구상업학교, 대구농림학교 등의 실업계 중등학교가 많이 설립되었다. 이후 대구사범학교(1923년)와 대구의학전문학교(1933년)등과 같이 전문교육기관이 개교하였다.

한편, 일제의 감시와 탄압 하에서도 개구청년활동(신우동맹)및 동맹휴학과 항일시위 등 교육현장에서의 학생반일운동은 계속되었다.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비밀결사 활동과 대구상업학교의 태극단 활동 등은 국권회복을 위한 조직적인 항일운동이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학생들의 항일 독립운동과 그 정신은 오늘날 교육도시로서의 명성을 이어오는 저력이 되었다.

Many schools were developed in Daegu at the start of the Modern Period. Beginning in 1905 and continuing onwards,the enlightenment movement activists built many schools in the city to provide a more modern style of education. The Korean traditional values still constituted the basis of the students' morality and ethics, but people turned to more Western sources for science and technology. After the Annexation of Korea, the Japanese Colonists focused on elementary and vocational education for Koreans with the aim of turning them into loyal subjects of their emperor, using schools as a tool for colonial rule. However, Korean students resisted the colonists under various movements and strove to preserve their national spirit and pride, while still enhancing their learning. (내용출처: 여행책자 인용했습니다.)

 

 

 

 

 

대구근대역사박물관에서 새로운 역사를 배워갑니다.

대구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볼거리가 있답니다.